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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발췌  [공식 밖의 여자들 ⑥벌크선 선장 김승주] 파도와 ‘맞짱’ 뜨는 승부사 < people& < ISSUE < 기사본문 - 여성조선

 

출처 : 여성조선(http://woman.chosun.com)

 

거대한 벌크선을 몰고 태평양을 횡단하는 우양상선 선장 김승주(33). 남자들의 세계로 여겨져 온 갑판 위에서 그는 사나운 파도와 당당히 ‘맞짱’ 뜨는 승부사다. 동시에 섬세함과 담대함을 두루 갖추고, 목표한 곳에는 반드시 닿고야 마는 진취성까지 겸비한 리더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들이 ‘감히’ 공식을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식을 벗어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반대로 엄청난 변화가 시작된다. 전통적인 ‘젠더 롤(gender role)’에서 벗어나 새로운 ‘롤 모델(Role model)’이 된 여자들, 리스크를 무기처럼 쥐고 맹렬히 전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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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담기조차 버거운 거대한 배를 능숙하게 진두지휘하는 김승주는 11년 차 항해사다. 2015년 LPG선 실습항해사로 처음 배에 오른 뒤, 컨테이너선 삼등·이등·일등항해사를 거쳐 지난해 선장이 됐다. 맨땅보다 물 위의 일상이 더 익숙해지기까지. 그 과정은 궂은 날씨에 만난 파도만큼이나 험난했지만 그럼에도 김승주의 돛은 단 한 번도 접힌 적 없었다.

항해사는 선박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반될 수 있도록 항로를 계획하고 운항을 지휘하는 직업이다. 쉽게 말해 정해진 배에 화물을 싣고 항구와 항구 사이를 오가는 일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다의 택배기사’다. 자동차운반선, 유조선, 여객선, 크루즈선, LNG선 등 수많은 선박 가운데 그가 현재 지휘하는 배는 벌크선. 길이 228미터, 대형 버스 20대를 이어붙인 길이의 배에 석탄을 싣고, 국내 화력발전소까지 안전하게 운반한 뒤 양하하는 것까지가 그의 임무다. 

총 20명의 선원이 탑승한 이 선박에서 김승주는 배의 캡틴이자 유일한 여성이다. 2025년 12월 기준 전국의 항해사는 1만1006명. 그중 여성은 144명으로 겨우 1.31%에 불과하다. 거기서도 여성 선장은 단 6명, 전체의 0.1%다. 망망대해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일만큼 희박한 확률 속에 그가 있다. 한 달여의 항해를 마치고 접안을 위해 잠시 상륙한 그를 경남 사천시 삼천포항에서 만났다. 

호주 뉴캐슬 항해를 끝내고 오셨죠. 육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뭘 하는지 궁금해요. 이번처럼 잠깐 내리는 ‘상륙’ 때는 안 가지만, 긴 휴가엔 일단 목욕탕부터 가요(웃음). ‘목욕재계’라는 말도 있잖아요. 몸과 정신에 밴 바다의 짠 기운을 쭉 빼는 거죠. 배에 있다가 내리면 이상하게 피곤한데, 엔진의 미세한 진동을 견디고 있던 몸이 고요한 육지에 다시 적응을 하느라 그런가 봐요. 긴장도 확 풀리고요.

휴가가 2~3개월로 꽤 길잖아요. 그 시간에는 주로 어떻게 지내나요? 저는 휴가마다 테마를 하나씩 정해요. 지금까지 한 열두 번 정도 휴가를 받았는데, 세 번째까지는 그냥 흥청망청 놀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매년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걸 하나씩 정하고 본격적으로 해봐요. 어떤 휴가엔 여행을, 어떤 휴가엔 바디 프로필을 찍었어요. 직장인 뮤지컬에 도전한 적도 있고, 책도 세 권 썼어요. 

 
# 편견을 깨고 선례가 되다

과거에는 ‘여자가 배를 타면 재수가 없다’는 미신이 있었다. 남성만 있던 배에 여성이 타기 시작하면 선원들의 정신이 흐트러지고 부정을 탄다는, 얼토당토않은 편견에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미신이다. 여자가 배를 타기 시작하면, 그 배는 부정을 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력, 리더로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게 아닌가. 


그가 졸업한 한국해양대학교는 항해·기관을 전공하는 해사대학의 여성 신입생 비율을 정원의 15%로 제한한다(2026년 기준). 어렵게 입학해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졸업해도 취업 문턱은 더 높다. 아예 여성 선원을 뽑지 않는 회사도 있거니와, 사회초년생으로서 첫발을 뗀 뒤에도 극악의 근무 환경과 결혼·출산·육아라는 리스크가 하선 전까지 망령처럼 따라붙는다. 김 선장이 지난 11년 동안 다른 여성 승선원과 함께 항해한 건 단 한번이다.

0.1%의 자리는 얼마나 고독한가. 게다가 ‘여자 선장’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는 이들과, 반대로 자신을 롤 모델 삼아 뒤따라오는 후배 여성들 모두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 리더가 된 이후로 김승주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결코 핸디캡이 되지 않도록 더욱 철저해졌다. 심지어는 인터뷰를 위해 메이크업을 한 자신을 선원들이 볼까 살금살금 내려왔다며 웃었던 그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승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지금보다 여성 항해사가 훨씬 드물던 시절이었어요. 영문도 모른 채 배정됐던 배에서 다른 배로 옮겨진 적이 있었죠. 알고 보니 선장님이 여성을 꺼렸던 거예요. 그분을 원망하기보다 충분히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더 잘해서 편견을 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여성 선장’으로서 남들보다 더 많이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겠어요. 워낙 남초인 세계라, 오히려 스스로 그런 압박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만약 배에서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선장이 여자라서 그렇지’ 하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더 철저해야만 해요. 다행히 지금은 여성 항해사들이 많아졌고, 업계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저도 여성해사인협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멘토링과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고, 한국 최초의 여성 선장이신 정경옥 선장님과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서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을 배 위에서 보내잖아요.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삼등·이등·일등항해사들은 당직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총 8시간을 근무하죠. 하지만 선장은 계획하기 나름이에요. 보통 일어나서 날씨부터 살피고 주변에 배가 없는지 확인해요. 목적지까지의 거리, 연료, 부식 등을 점검하고 갑판 순찰을 돌죠. 어떤 상황에도 곧장 대응할 수 있어야 해서 긴장감이 높은 편이에요.

다양한 국적의 선원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문화 차이나 분쟁도 생길 것 같아요. 지금은 필리핀 선원들과 인도네시아 선원들, 그리고 한국인 기관장님 한 분과 함께 항해하고 있어요.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대부분 무슬림이라 술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죠. 반면 필리핀 선원들은 즐겨 먹어서 칼과 도마를 따로 관리할 정도예요. 아, 예전에 선원 둘이 세탁실에서 세제를 던지며 다툰 적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 일종의 ‘은따’가 있었더라고요. 저 역시 배의 홍일점으로 지내며 억울했던 경험이 많다 보니, 선원 한 명 한 명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려고 해요. 두 사람을 같은 작업에 배치하지 않고 분리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배의 ‘담임선생님’ 같기도 하네요. 리더로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을까요? 저는 한 달에 한 번 꼭 개인 면담을 해요. 좋아하는 건 뭔지, 목표는 뭔지, 치아는 괜찮은지(이가 아프면 정말 고생하거든요) 하나하나 물어봐요. 배 생활의 고충도 듣고, 제가 풀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들어주려 하죠.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갑자기 일이 생기는 경우가 확실히 줄었어요. 소통이 된다는 느낌, 자기 의견이 반영된다는 느낌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항해 중 응급 상황이 생기거나 육지에서 급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요? 배에도 의료 공간과 장비는 갖춰져 있어요. 또 항해사는 의료관리자 자격증을 필수로 갖고 있고요. 예전에 조리장이 천식으로 호흡 곤란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수에즈 운하를 지나던 중이라 하선 후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었어요. 만약 태평양 한가운데였다면 위험했겠죠. 육지와 단절되는 건 항해사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중동 항해 중 외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당장 출발해도 장례식에는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바다에서는 어디를 가든 며칠이 걸리니까요.

선장으로서의 압박감은 어떻게 견디나요. 선생님이 교실 안에서 학교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선장도 비슷해요(웃음). 그럴 때 저는 책을 많이 읽어요. 강연이나 강의도 자주 듣고요. 지금 기관장님이 선배님이라 고민을 털어놓으면 조언도 많이 해주시죠. 글을 쓰는 것도 도움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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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는 나의 운명
항해사, 이처럼 신나고 고독한 일이 있다니
실습생 시절, 그는 스리랑카에서 처음 마주한 거대한 선박에 압도, 아니 매료당했다.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뛰는 웅장함과 언젠가 저 거대한 배를 직접 이끌게 될 것이라는 설렘에 김승주는 항해사의 꿈을 굳혔다.

그러나 주니어 시절 섰던 새벽 당직, 검은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는 제 존재가 한없이 희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광활한 어둠 속에서 무력하게 흔들리는 거대한 배, 그보다 한참 작은 인간인 자신은 얼마나 사소한가. 이 바다는 언제든 자신을 삼켜버릴 수 있었고, 그렇게 파도에 섞여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에서 영영 지워질 수도 있었다. 김승주가 진짜로 싸워야 했던 것은 혹독한 환경도, 거친 파도도, 남초 사회도 아닌 바로 그 끝을 모르는 막연함, 이 바다에 홀로 깨어 있다는 고독감이었다.

항해사의 필수 덕목으로 그는 주저 없이 ‘정신력’을 꼽는다. 외로움을 견뎌냈고, 슬럼프를 지나왔기에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꾸준히 글을 쓰고, 휴가 중에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길을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에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는 항해사로서의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또 자긍심을 지닌다. 

항해사라는 직업의 매력은 뭘까요? 너무 많아요. 일단 긴 휴가가 가장 크고요(웃음), 연봉이 높은 데 비해서 쓸 일이 제로라 버는 족족 통장에 쌓여요. 또 기항지에 내릴 수 있을 땐 자연스럽게 그 나라를 여행할 수 있죠. 풍경도 장점이에요. 운이 좋으면 고래도 보고, 특히 별자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남십자성이나 전갈자리, 켄타우루스자리를 보며 ‘아, 남반구에 왔구나’ 하죠. 해양대에서는 천문항해학 수업을 들어요. 별을 보며 항해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별을 보면서 항해한다니, 너무 낭만적이에요(웃음). 홀로 밤바다를 지킨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보통 당직은 0시부터 4시까지라서 처음엔 ‘다들 나를 믿고 자고 있다’는 책임감이 컸죠. 그런데 대양 한복판으로 나가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그런 암흑 속에 있으면 ‘내가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나는 왜 여기 있을까, 왜 배를 타고 있을까. 그렇게 끊임없이 저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보냈죠.

고독감도 컸을 것 같아요. 초반에는 사람들에게서 잊힐까 봐 두려웠어요. 한 번 바다에 나가면 몇 달씩 걸리니 “밥 한번 먹자”는 말도 쉽게 할 수 없어요. 육지에서 제 흔적이 옅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그런 두려움은 ‘황천항해(악천후에 항해하는 것)’를 겪어보면 어쩔 수 없어요. 그 큰 배가 종잇장처럼 흔들리거든요. 파도 한 방 제대로 맞으면 이 망망대해에서 그냥 사라지겠구나 싶어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요? 일등항해사 시절이요. 삼등·이등항해사는 주니어 사관이라 보고만 하면 되는데 일등항해사는 배 전반을 다 책임져야 하죠. 당직과 화물 작업, 선체 정비는 물론이고 선원들의 생활까지 다 살피는 ‘엄마’가 된 기분이었어요. ‘국이 짜다’, ‘변기 물이 안 내려간다’, ‘내 타수가 말을 안 듣는다’ 등등. 당시에는 경험도 부족했고 일 처리도 서툴렀어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이명도 들리더라고요. 결국 자진 하선을 선택했습니다.

슬럼프를 겪었군요. 어떻게 극복하게 됐나요. 당시 굉장히 힘든 휴가를 보냈어요. 배에서 잘해야 ‘잘 하는 항해사’지, 육지에선 잘 해봤자예요. 그래서 자기개발을 하는 대신 어떻게 정신력을 단단하게 다잡을지, 성과를 내면서도 지치지 않을지 정신을 단련했어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긍정 확언을 하고, 루틴을 만들면서 성향 자체를 갈고닦았죠. 배는 계획대로, 뜻대로 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이제는 여유가 생겼어요. 늘 플랜 B를 마련해두고, 어떤 비상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대처할 만큼 임기응변이 늘었죠.

막 배에 승선했던 시절과 지금의 김승주를 견주어 보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사람이 됐죠(웃음). 또 과거에는 파도가 닥칠 때마다 두려웠다면, 지금은 그 파도를 즐겨요. 물론 어느 직급이든 그때그때의 고민은 늘 있죠. 다만 저는 후회가 남는 걸 너무 싫어해요. 그래서 어떤 순간이든 최선을 다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아요. 

다음 스텝은 뭔가요? 항해사로서 어떤 목표가 있는지 궁금해요. 선장 다음으로는 도선사라는 직업이 있어요. 항구의 지형을 잘 아는 이가 입항하는 배에 올라타서 배를 부두에 대주는 일인데, 말하자면 ‘발레파킹’이죠(웃음). 그리고 현재로선 후배들을 위한 팟캐스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고민이나 궁금한 점을 콘텐츠로 만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좀 더 멀리 보자면, AI를 활용해 선박의 단순 업무들을 자동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매뉴얼이나 지침서를 정리해 사고를 줄이고, 더 안전하게 배를 탈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거든요. 인간 김승주로서는, 음, 세상의 편견을 깨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웃음).

▼ 김승주 선장과의 인터뷰 영상은 <여성조선>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mgaMCO5QVNM?si=hlsFXxSQmfOm6L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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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조선(http://wo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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